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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문화관광 해설사가 들려주는 금성관
전라남도 문화관광 해설사가 들려주는 금성관
  • 오재랑 기자
  • 승인 2019.07.23 03: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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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미디어] 전라남도 유형문화재 제2호인 나주 금성관은 조선 성종때 초대 목사인 이유인이 세웠다고 한다.
정연수 전라남도 문화관광 해설사의 안내로 금성관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금성관의 첫 관문인 망화루는 외삼문이라고도 한다. 망화루에 올라가 지휘를 했고 때론 연회를 하기도 했다.

망화루에서 왼쪽을 보면 우물이 하나 있는데 식수로 사용하기도 했고 목조건물이기 때문에 방화수로 이용되었다.

망화루를 지나면 돌로 된 세 길이 있는데 삼도라 부른다.
삼도의 가운데 길은 옆의 길보다 높게 되어 있는데 이 길을 어도라 하여 임금님이 다니는 길이다. 임금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양쪽으로 다니는데 우측통행을 해야한다.

길에는 박석이 깔려있다. 박석은 강한 햇볕이 내리쬐면 반사되는것을 막아주고 비가오면 빗물이 골을 타고 내려가 빗물이 고이지 않아 길을 걸을때 발이 젖는걸 막아준다.

박석으로 된 삼도를 지나면 중삼문이 나오고 이곳에서 보면 내삼문이 보여야 하는데 터만 있을뿐 문은 사라진 상태여서 금성관이 보인다.

금성관의 금(錦)자는 비단금자다. 나주는 옛날부터 비단으로 유명한 고을이다.
비단의 재료가 되는 누에고치를 많이 생산했다고 한다. 

금성관을 중심으로 우측에 있는 건물이 동익헌, 왼쪽에 있는 건물이 서익헌이다. 동익헌에는 벽오헌이라고 편액이 써있는데 건물 뒤에 오동나무가 심어져 있어 벽오헌이라 편액을 썻다고 한다.

금성관에서는 매월 1일과 15일에 임금이 있는 한양을 향해 궐패와 전패를 두고 임금께 예를 올리는 망궐례를 지냈다.
동익헌인 벽오헌에서는 정삼품 이상이 유숙과 연회를 베풀었고 좌익헌에서는 종삼품 이상이 유숙과 연회를 하던곳이다.

벽오헌 옆에는 조선시대 관청 연못지와 정자터가 발굴되었다. 발굴당시 분청사기 파편이 많이 나오고 파편조각 뒷면에 수군의 관직인 임치첨사가 적힌 파편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지금의 관사로 불리는 목사내아는 금악헌이라는 현판이 있는데 안으로 들어가면 한옥체험을 할 수 있다.
목사가 묵었던 방과 식솔들이 살았던 방을 이용해 숙박을 할 수 있고 방의 이름은 나주를 위해 많이 애써 명망이 높은 목사의 이름을 따서 유석중방, 김성일방 등 이름을 붙였다.

또한 내아에는 500년 이상 된 팽나무가 있는데 이를 소원나무라고 하여 숙박을 하면서 목사의 기운을 받고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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